나의 고교시절과 20대를 송골매와 구창모에 빠져 살았다. 그 시절의 가슴 설렘이었고, 열정이었고 행복이었었다.
어찌해서 이 그룹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요즘 아이들 못지않게 나도 쫓아다닌듯하다. 그 시절의 나의 기쁨이었고 살아가는 이유 들이었는듯하다.. 우리의 워너비, 나의 우상
그들이 40년 만의 비행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송골매의 연출을 맡은 편은지 PD는 “송골매의 명곡들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만한 독보적인 장르”라며 “대중음악계가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로 양분화한 가운데 록음악에 심취한 리스너가 여전히 많을 것이라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송골매 전성기인)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내고 자녀 교육 등에 희생하느라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분들께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라고 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 한국의 청년문화는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가요 대탄압으로 인해 전부 싹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팝송을 들으며 음악적인 갈증을 해갈했고,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그룹사운드가 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산울림, 송골매 같은 밴드들은 한국식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이들은 당대 최고의 스타 가수 대접을 받았다. 즉, 한국 록 음악의 암흑기 때를 대표하는 인기 밴드였다. 배철수와는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방에서 구창모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활주로로 출전한 배철수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엄청난 미성의 목소리여서 잊을 수가 없었다고. 이후 배철수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가 송골매 2집을 준비하던 시기 그를 영입했다고. 그리고 그 뒤에는... 정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다시 한번' 같은 곡들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크게 히트를 하면서, 국민 밴드와 인기 아이돌로 거듭나게 된다. 조용필이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존재이던 1980년대 시절에, 조용필 다음가는 인기는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나 공히 '송골매'라고 대답할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배철수의 독특한 캐릭터와 담백한 창법, 구창모의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 역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이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제작되었다. 80년대 당시 이런 영화가 제작된 가수들이 조용필, 전영록, 이상은 같은 가수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예능 프로, 광고까지 발을 뻗쳤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서 당시 음반사 사장이 보너스로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고. 이 인기는 구창모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송골매 4집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높은 인기에 구창모는 솔로 활동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다른 멤버들과 음악적으로 마찰도 잦아지게 되고 많은 스케줄에 목상태도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1985년 송골매를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해 희나리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 트레이드 마크는 비음 섞인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 미소년 느낌이 강한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타고난 하이톤의 미성을 바탕으로 비음을 적절히 활용하고, 울림도 일정하게 주어 노래를 운용하는 스타일이다. 이를 통해 고음역대를 매우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특징.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한 발음과 음정, 박자감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리듬감이 매우 좋아 펑키한 곡에서 큰 강세를 보였다. 스타카토를 유지하며 ‘허’ 등의 추임새를 넣어 리드미컬함을 살리는 부분에 있어선 거의 장인의 수준. 위와 같은 점들 때문에 라이브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너가 없던 시대에 비교적 안정적인 발성과 테크닉으로 라이브를 기복 없이 운용했던 대단한 보컬이었다.
실제로 송골매 시절 대표곡들을 직접 불러보면 사람이 아예 못 부를 정도로 어렵지는 않으나, 기본 키가 꽤 높은 편에다 비음과 울림, 호흡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 소리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구창모한테 맞춰서 써진 곡들이 많은지라 초심자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며 기본이 갖춰져 있다 해도 느낌을 살리기 매우 어렵다. 일단 구창모의 그 미성과 리듬감을 살리기가 어렵다. 당장 노래방에서 모두 다 사랑하리,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을 원키로 불러보면 이게 은근히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팝적인 세련된 감각과 보통 여린 미성의 보컬들에겐 결여되기 쉬운 파워까지 갖춘 보컬이었다. 고운 음색과 고음, 성량, 리듬감까지 모두 갖췄던 것이다. 하드록, 펑크(Funk), 발라드, 포크 등 표현 가능한 장르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 때문에 그의 가창력은 언제나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에 '조용필을 제외하면 미성의 젊은 보컬들 중에서 최강'이라는 평도 자주 받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런 그의 장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이 바로 송골매 2집 다시 한번, 송골매 3집 꽃씨. 등이며 당시 다른 보컬들과 비교되는 젊고 세련된 감각의 표현력은 정말 많은 극찬을 받아서, '보컬이 쌔끈하다(...)', '보컬이 세련됐다' 등등 젊은 층의 극찬도 많이 보일 정도로 지금 들어도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80년대 초반, 송골매 2, 3집 때의 구창모는 그 시절 미성 보컬리스트가 설 수 있는 정점까지 갔던 걸출한 보컬리스트였던 셈이다. 이들이 헤어진 후의 초반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송골매란 우산을 박차고 나온 구창모는 솔로 데뷔 곡 ‘희나리’로 장외 홈런을 때려내며 "기획사를 옮겨 잘 된 가수 없다 “거나 ”동료를 버리고 떠난 뒤 잘된 놈 없다 “는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을 말끔히 날려버렸다(인간이 품고 있는 정(情)의 가장 전근대적인 해석인 이런 불공정 거래(?)는 JTL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아직까지 우리 음악계에 자리 잡고 있다. 히트곡을 낸 뒤 기획사를 옮긴 가수들은 대부분 방송국을 중심으로 한 의도적인 외면으로 인해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송골매는 ‘하늘나라 우리님’으로 그룹 최고 히트곡을 만들어 내며 모든 기타 지망생들에게 고전적인 리프 한 가락을 제공했다. 비틀스(Beatles)나 들국화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한 그룹에 두 리더가 같이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상기할 때 이들이 택한 결별은 확실히 윈-윈 전략으로 여기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팬들은 엄청난 성공을 안겨 준 구창모의 데뷔 곡 ‘희나리’를 두고 그가 송골매에게 보내는 마음의 메시지라는 등의 해석을 내리며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곡의 인기는 바다 건너 홍콩으로 건너갔으며 나문(羅文)이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홍콩 누아르에 불을 지핀 영화 <영웅본색>에서 ‘기허풍우(幾許風雨)’라는 곡으로 쓰였다.
날개가 있음에도 ‘하늘나라 우리님’ 이후 추락하기 시작한 송골매와 달리 구창모의 인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집의 ‘문을 열어’는 꾸준히 전파를 탔으며 2집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와 ‘방황’이 잇달아 차트의 수위권으로 치달으며 국내 최고의 남자 가수라는 타이틀의 문턱에 다가섰다. 3집에서는 ‘외로워, 외로워’와 ‘슬픈 멜로디는 나를 울려’가 인기를 얻었으며 그 이후에도 ‘한때는 진정 그대를’, ‘못 잊어’, ‘안녕 내 사랑’ 등의 히트곡과 준히트곡들을 꾸준히 내며 ’ 90년대 초반까지도 인기가수의 면모를 유지했다.
1979년 데뷔한 송골매는 ‘모두 다 사랑하리’ ‘처음 본 순간’ ‘모여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 9월 발표한 정규 9집을 끝으로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가 지난해 7~9월 전국 투어 콘서트를 통해 32년 만에 컴백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소감에 대해 배철수는 “40여 년 전 음악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놀랄 만큼 호응을 많이 해주셔서 노래하는 동안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구창모 역시 “첫사랑에 빠졌을 때보다 10배 정도 되는 설렘을 느꼈다”며 “내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흥분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송골매는 이번 콘서트가 전 세대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창모는 “ 온 가족이 모여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라고 말했다. 배철수는 “아버지 세대가 트로트만 좋아한다 오해하지만, 저희야말로 가장 록을 많이 들었던 세대”라며 “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가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보고, 부모 세대들은 자식 세대에게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는 걸 자랑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송골매는 우리 시절의 활력소였었다. 그 시절 제일 좋아했던 구창모
여러 가지 이유로 송골매를 떠났던 구창모랑 2022년 하반기(9월 11일~12일) 양일 간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열망'이라는 타이틀의 전국 투어를 예고하였다. 38년 만에 구창모가 재합류했으며,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음악감독을 맡는다. 송골매의 오랜 팬들은 물론이요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이 지대한 이들에게까지 큰 화제를 모았다.
아울러 새로운 음악적 장류를 시도하여 비교적 생각보다 많은 음악적 도전을 하였기에 줄여서 요약했다.
1. 하드 록 : 송골매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장르로써 주로 배철수가 음악적으로 많은 도전을 하였다. 록과 메탈의 중간 경계에서 배철수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비교적 트윈기타 (리듬, 리드 기타)를 주로 연계하며 연주함.
2. 팝 록 : 역시 송골매 하면 떠오르는 장르로써 구창모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었다. 좁게는 펑크 한 음악부터 넓게는 휭키한 흑인풍 리듬을 구사하는 아주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음역대를 주로 높게 잡고, 주로 이 장르에선 베이스를 메인을 두고 뒤에 악기들이 배경이 되는 연주법을 추구함. 추후 3기 멤버인 베이스 이태윤이 조금 더 음악적인 면에서 추구하기도 하였다.
3. 팝 메탈 : 송골매의 3기 라인업부터 시도했다. 비교적 기타나 베이스 보단, 키보드, 신시사이저 리프를 적극 활용하면서 전주나 도입 부분이 끝나면 달리는 곡으로 기타 연주와 베이스, 드럼 의 빠른 비트가 진행한다. 비교적 쭉 가다 훅 올라가는 게 특징, 가끔 배철수, 이태윤이 시도하였으며, 키보드 이봉환이 주로 이런 곡을 시도하였다.
4. 재즈 록 : 베이스 이태윤이 주로 시도하였다. 다소 엉성해 보일 수 있는 슬랩 주법을 적절한 난이도와 컨트롤로 조금 더 대중적으로 연주하며 노래를 시도하였다. 특히 드럼과 베이스의 합을 조화롭게 리듬을 주로 하며, 송골매 후기 라인업이 프로다운 연주력을 가지는데 기여하였다. 물론 이 부분에서 배철수도 나름 추구하기도 했다.
5. 사이키델릭 록 : 활주로 때부터 송골매에 이르기까지 추구하던 한국적인 록 음악을 추구하는데 많은 시도를 하였다. 특히 특유의 리프와 토속미가 가득한 배철수를 보컬로 추구하며 각 앨범에 1곡씩은 꼭 시도하고, 그걸 다른 장르와 결합하여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들리는 소리와는 다르게 의외로 따라 하기에는 난이도가 조금 있다.
6. 로큰롤 : 전반적으로 6집까지 모든 사운드와 기본적인 연주 흐름은 이 장르를 주로 하였다. 그리고 각 앨범마다 꼭 하나씩 있는 송골매의 특유의 로큰롤을 수록하였다. 초기엔 구창모도 자주 활용하였지만, 후에 갈수록 배철수가 활용하게 된다. 그리고 의외로 배철수가 좀 더 이쪽이 더 잘 맞는 느낌도 있다.
7. 하우스 음악 : 자니 윤 쇼에서 거의 대부분 연주하였다. 이를 통해 송골매 3기 일명 '신송골매'가 우리나라에서 연주를 가장 잘하는 밴드로 인식되기도 한다.
8. 유로댄스 디스코 : 주로 클럽이나 야간 업소에서 연주했으며, 가끔 방송에서 연주하였다. 아무래도 가볍지만 춤을 추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기에 웅장하고 강렬한 연주를 하였다. 그러나 다소 연주력에 비해 보컬이 배철수..... 아무튼 이 장르를 통해 연주력은 인정하였지만, 자기들의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 많은 장르를 시도하였지만, 음악적인 실험 도전보단 흥행과 트렌드의 흐름이 다소 있어 요약하여 여기까지만 설명하였다.
끝으로 내가 젤로 좋아하는 노래, 노래방 가면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 가 희나리이다.. 구창모의 솔로곡 ‘희나리’는 ‘마르지 않은 장작’을 뜻하는 순우리말. 이별한 연인을 잊지 못하는 애절한 마음을 마르지 않은 장작에 비유한 노랫말이 미성과 어우러져 더 애절하게 들리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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